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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내가 가는 곳마다 좋은 회사로 만들기

  • 작성일
  • 20-01-16 13:31
  • 조회
  • 1,038



정의롭지 않고 용기가 없어도 이기는 방법에 관하여 ( To my Avengers)

 



‘모멸감’
 콜센터 상담사로 입사 했지만, 신입이란 고된 업무에 지친 관리자들에게 회사가 제공 한 감정의 쓰레기통이었다. 고객과 업체, 물류 그리고 관리자가 주는 압박을 견디지 못한 동기들은 무더기로 퇴사했고, 매일 관리자로부터 느끼는 이 낯선 감정의 이름을 알아내는데 3개월이 걸렸다. 스트레스 관리에 성공한 부 매니저는 팀장으로 승진 했고, 나도 업무 적응에 성공하자 관리자는 다음 신입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적응’
1년이 지나고 시스템이 보였다. 급여가 자꾸 틀리게 들어온다는 말에 “이렇게 큰 회사가 설마 너보다 계산을 못하겠니?” 라고 했고, 실적이 저조한 도급사의 팀을 아예 없애 버렸다는 말에는 “그럼 잘 하면 되잖아? 회사가 이윤을 추구 하는 게 잘못이야?”했고, 식사시간 10분만 단축하고 콜 좀 받으라 했을 때 “콜센타는 원래 그런 거야”라며 철없는 후배를 달랬다. 돈벌이란 본래 고된 법이 아니던가? 어렵게 적응한 회사를 믿었고 그 믿음의 대가로 평온과 안정된 삶을 얻었다.



‘고장’
2년이 지나자 몸이 아팠다. 팀의 실적 부진으로 매일 근무 시간이 바뀌고, 처음엔 매너 있게 10분만 먼저 콜을 받아달라던 회사가 20분, 30분 강제로 식사 시간을 단축시켜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 그리고 돈!  내 돈!  연차가 오를수록 급여가 줄어드는 놀라운 신비를 경험하고 관리자에게 이유를 물으니 ‘콜센타는 본래 (퇴직금 안줘도 되는) 1년 미만의 근무자를 선호하는데, 우리 도급사 에는 버티고 있는 장기 근속자가 너무 많다. 그러니 알아서 나가달라’는 의미라고 했다. 지난 달에 입사한 신입이 4년을 넘게 일한 경력자보다 급여가 많았지만 우리는 자존심이 월급 주는 거 아니라며, 다른데도 똑같다며 조금만 더 버텨 보기로 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 물리적으로 도저히 30분 안에 식사를 끝내고 복귀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회사는 계속해서 식사 시간 단축을 요구했다. 아무리 힘들다고 매일 얘기해도  ‘그래도 여기는 돈으로 주지 않느냐? 다른 도급사는 화장실도 못 가게 한다.’는 말로 입을 막았다.

 

 

‘시스템’
하나 둘 고장 난 상담사들이 매일 죽는 소리를 해대자, 어차피 도급사 내에서 하는 회의 내용은 원청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해도 소용없으니 그만 하라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처음으로 노동청에 전화를 걸었다. 이것저것 물어 보고 알게 된 사실은 ‘노동청도 콜센타 구나.’ 
우리도 똑같은 반품기준을 가지고 누구는 고객입장에 서서 진행을 해주고, 누구는 기준을 무기로 휘둘러서 반품에 대한 의지 자체를 꺾어 버리기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같은 문의를 계속 해 보는 것이었다. 누구는 위로를, 누구는 회사가 돈을 지불한다면 불법은 아닐 수도 있다. 누구는 그렇게 힘들면 민원을 넣어라. 단, 민원은 실명제다. 회사가 알면 곤란한데요? 그건 규정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 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불만은 ‘두려움과 번거로움’에 묻히고, 상담사들끼리 “내가 노동청에 알아 봤는데 어쩔 수 없다고 하던데? 아니면 민원 넣으라던데? 누가 할 거야?”의 패턴이 반복되다 사라졌다.



‘구글신의 안배’
노동청은 포기하고 매일 콜센타만 검색했다. 그러다 우연히, 아니 돌아보니 운명처럼 다산120 콜센타 노조가 만들어지게 된 과정을 담은 인터뷰를 보게 되었고, 마침내  희망연대노동조합 까페에 도달하자 신희철 국장님에게 연락 할 수 있었다.(지금도 그때 국장님을 찾아낸 내 손가락을 매우 칭찬 한다) 그렇게 쪽지로 문의를 하고 답변을 받은 거 같은데, 그리고 전화 상담을 몇 차례 한거 같은데, 나는 어느새 직접 희망연대노조 사무실로 상담을 하러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테이블에는 신국장님 뿐 아니라 노무사 포함 네 분이 더 동석했고, 밥 좀 먹게 시간을 달라는 일이 너무 커지는 거 같아 겁이 나기 시작했다. 미리 보내 놓은 계약서, 관리자의 지시 내용, 업무 시간 변경, 급여기준 변경 사항 등이 검토 되는 동안, 국장님은 첫 만남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평온한 회사의 실체를 하나하나 알려 주셨다. 충격에 정신이 혼미해져 국장님이 입고 있는 노조 조끼만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패션취향과 다소 결이 다르다는 사실을 동지들(이미 한쪽 머릿속에선 온갖 고초를 이겨내고 노조를 만들어 크레인에 올라 농성 중)에게 어떻게 이해 시켜야 하는지, 호피무늬로 조끼를 만들면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지 않을까 등등으로 변질되던 망상이 서류 검토를 끝낸 노무사님의 질문에 의해 사라졌다.


무엇을 원하느냐고? 어떻게 바뀌길 바라느냐고? 시스템을 바꾸려면 집단행동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할 수 있겠냐고? 물론 정권이 바뀌어서 노조 만들기는 한결 수월하기는 할 거라고도 했다.
마치 내가 이미 온갖 망상 끝에 벌써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 했고, 불만은 있지만 시작할 용기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을, 결국 나의 분노는 정의에 대한 열정과 행동으로 치환 되지 못할 것임을 다 알고 묻는 거 같아서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만 싶었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아직 빚이 남아서 회사에서 짤리면 안 된다’고 나의 비겁함에 핑계를 달아주었다.



‘해결사’
첫 번째 미팅이 처참하게 끝나고 다 틀렸다고, 그저 육신이 허락할 때 까지만 버텨보자고 하고 있는데 신희철 국장님이 단톡방을 만들어 회사 상황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거기에 오늘도 밥을 못 먹은 내용과 관리자들의 지시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렸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들어주려고 한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감사했다. 그리고 꾸준히 징징댈 수 있음에 몹시 행복했다.

여전히 단체 행동은 겁이 나고 몸은 갈수록 엉망이 되어갈 무렵 신국장님이 저 멀리 있는 원청에 공문을 하나 보내 보겠다고 했던 게 어제 같은데 갑자기 회사에 전체 ‘긴급 공지’가 떨어졌다.
앞으로 절대로 휴게시간을 단축하지 말라는! 그리고 누군가 물어보면 충분히 휴식하고 있고 심지어 티타임도 있다고 하란다. 정말 하루 만에 콜센타가 뒤집혔다. 누군가 고발을 했다고 하고, 회사는 고발자를 찾는 중이란다. 얼마 만에 1시간을 쉬는 거냐며 축제 분위기였지만, 정작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렇게 해결될 일을 1년 내내 답도 없는 벽에다 대고 외쳤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나의 해결사가 보내준 폭로 기사에서는 원청은 그런 불법적인 일은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것은 도급사들 간의 경쟁에서 벌어진 해프닝에 불과하며 자기들은 엄청 착하고 좋은 회사라는 비겁한 거짓 변명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전략가’
두 번째 미팅이 있었다. 여기서 만난 정현철 국장님은 현실적인 전략가다. 억울함에 취해서 감정적으로 굴려고 할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준다. 가끔 회사가 어떻게 나올지 미리 예상 범위를 말해 주는데 거의 예언 수준이라 좀 무섭기도 했다. 전략가가 보내주는 카톡을 무한 반복해서 읽으면서, 이성적으로 전체적인 판의 흐름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또 원하는 바는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하고, 적당한 시기에서 타협 할 줄도 알아야 하며, 계약서 보는 법, 노동자의 권리, 노동청에 있는 주무관이나 근로감독들의 실체 등에 대해서도 배웠다, 일단 쪼랩의 문제는 내가 당한 일이 부당한 일인지 도통 가늠이 안 된다는 점인데 전략가에게 문의하면 칼같이 정확한 진단이 나왔다. 또 여러 가지 방향성을 제시 하고 본인에게 맞는 걸 선택 하라고 하는데 제대로 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물어보고 냉철하게 상황을 보려고 노력해야 했다.



‘레벨 업’
해결사와 전략가를 등에 업고 자동 레벨 업이 되자 슬슬 겁을 상실하게 되는데 그 행태가

1) ‘상담사는 공무원이 아니므로 당연히 법정 임시 공휴일에 쉬지 않는다.’고 공지가 내려온다. 회사에 대한 믿음을 잃은 자는 구글로 검색하고 노동청에 전화도 해 본다. 역시나 노동청은 ‘회사에서 하는 말이니 틀리지 않을 것’이란다. 전략가에게 일러바친다. 계약서에 휴무관련 조항을 보면 법정공휴일에 쉬게 되어있다고 캡쳐 해서 팀장에게 보내라고 한다. 살짝 망설였더니 도급사에서 딴소리하면 박살내버리겠다고 한다. 험한 말에 용기를 얻고 시키는 대로 해본다. 그리고 정말로 그날은 휴무일이 된다! 보너스로 본사에 관리자들이 줄줄이 호출되어 박살나고 너희 팀 상담사 나대지 못하게 하라고 했단다. 기분이 좋아진다.

2)급여 계산이 자꾸 틀린다고 전략가에게 일러바친다. 통상임금 계산법을 배워 동료들에게 알려주었더니, 신입이 오면 그것부터 알려주기 시작 한다.

3)회의시간 공지 내용 중 상담사에게 불리한 부분이 나오면 노동청에 한 번 알아보겠다고 툭 던진다. 팀장은 노동청이 언급 되면 보고서를 써야 한다며 한숨 쉰다. 다음날이 되면 안건의 내용은 미묘하게 바뀌어서 재 공지 된다.

4)블러핑 기술 남발로 센터장 면담이 진행된다. 원청에서 두 번 당하지 않는다고 벼르고 있다며 노동청에 다시 전화해서 본인이 오해 했고 회사와 잘 해결 했다고 하라고 한다. 그동안 임금 계산 틀린 부분 입금되면 전화 하겠다고 거짓말 한다. 밀린 임금을 돌려받는다.



‘복수’
빚을 청산 하고 꿈에 그리던 퇴사를 계획하고 있는데 뒷자리에 앉은 주간 관리자가 퇴근시간 5분전에 신입을 불러놓고 40분간 교육을 빙자한 갑질을 시전 하고 있었다. 20분전부터 녹음하고 있었는데 결국 나이 지긋한 신입은 울면서 일을 못해서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나서야 퇴근 할 수 있었다. 관리자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신입을 좀 갈궜더니 아줌마가 운다고, 너무 웃기지 않냐? 며 신나게 깔깔 되었다. 그녀의 해맑은 웃음소리로 나는 3년 전 신입 시절을 떠 올릴 수 있었다. 맞다. 그 관리자는 나에게 ‘모멸감’이라는 단어를 알려 준 그녀였다. 그날 팀 회의에서 녹취한 부분을 틀고 고발 의사가 있음을 알렸다. 이후 그 관리자가 나를 피해서 다닌다고 소문이 났고, 내가 퇴사 할 때 까지 그녀의 웃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득과 실’
처음으로 참석한 회식이 송별회가 되었다. 센타장이 신입 교육에서 우리 콜센타는 본인의 희생으로 식사시간 단축이 없는 좋은 회사가 되었다고 했단다. 당시에 느끼지 못했던 기쁨과 보람이 뒤늦게 밀려와 주체를 못하고, 걱정이 많은 동료들에게 ‘회사가 주는 서류에 함부로 싸인 하지마라. 부당한 일을 당하면 기록하고 증거를 남겨라. 힘들다고 신입한테 풀지 마라. 우리는 혼자가 아니고 도움을 주는 곳이 많다.’ 이런 저런 잘난 척으로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퇴사하고 꼬박 열흘을 밤마다 울었다. 당시 감정노동자를 대상으로 시에서 운영하는 무료 상담을 받았는데, 회사에서 말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대응하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이 패착이었다. 고장 난 사람처럼 이상한 지점에서 울음이 터지는 게 멈추지 않아 생존을 위해 바로 티켓을 끊고 도주했다.

치앙마이에서 이너피스를 빙자한 호화 은둔 라이프를 계획하고 갔는데 퇴직금이 안 들어온다. 세상 잘난 척을 다 해 버린 그날이 떠올라 부끄러워 어벤져스에게 이르지도 못했다. 두 달 만에 퇴직금을 받고 아름다운 이별 따위 개나 주라며 복수를 다짐 했다.



‘AS'
6개월 만에 귀국, 역시나 지난달 퇴직한 동료가 퇴직금 계산이 틀린 걸 발견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전화가 왔다. 전략가의 연락처를 넘겼다. 그 뒤로 퇴사자들 단톡방을 만들어 내용을 공유하고, 도급사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항의 전화를 하고, 두려울 게 없는 퇴사자들이 임금체불로 연쇄 고발을 시전 했다고 한다. 진심이 느껴지는 책임자의 사과 전화와 밀린 임금과 이자까지 받아 내고 나니 ‘이것이 아름다운 이별 아닌가?’ 싶었다.



‘예고’
귀국한지 나흘 만에 콜센타에 입사하고 어벤져스에게 알렸다.
전략가는 내가 해외체류 중일 때 이미 갑질119밴드를 알려주었으나 이너피스를 위해 철저히 외면하다 뒤늦게 들어가 보니 이렇게 모일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신기했다. 해결사는 내가 처음 해보는 계약 형태와 회사의 구조에 대해 알려 주었다. 들어도 모르겠다고 고백하니 부당한일 없이 돈 잘 주면  마음 편하게 잘 다니라고 했다.


1년이 지나자 회사 시스템이 보였다. 익숙한 전개는 우연히 아니다. 실재로 같은 패턴의 게임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달라진 것은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 뿐 이다. 팀 내에 갑질과 성희롱 관련 고발이 있었고, 나는 당사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전략가에게 내용공유만 하고, 회사의 대응 방식을 관찰 할 수 있었다. 성급했던 고발은 증거부족으로 무혐의 처리가 되고 다음날 파견사에서 고발한 상담사를 데리고 나가 그대로 퇴사했다. 


이것은 실패일까? 누군가 자신을 고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관리자는 상담사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는 드라마 대사가 떠올랐다. 한편 고발 당사자에게 어떻게 하길 원하는지 물어보니 어차피 정떨어져서 다음 달에 퇴사하려고 했는데, 실업급여를 받게 되었다며 몹시 좋아했다. 아주 훌륭한 실패 같다.



‘엔드게임’
1년 6개월이 지나자 몸이 아팠다. 컨디션 저하로 연차를 쓰겠다고 했더니 관리자가 반려했다. 이제 무언가 시작되었음을 느끼고 기계처럼 증거를 모으고, 노동청에 전화하고, 어벤져스에 상황을 알렸다. 전략가에게 연차 사용 시기 결정권은 노동자에게 있음을 확인 받고 질렀다. 관리자들과의 면담이 시작되었고 ‘너의 행동은 모두 본사에 보고되고 있다, 연차 사용 결정 승인은 관리자의 권한이다. 콜센타는 일반 회사와 다르다, 본사 노무사들이 확인한 사실이다. 아프다는 이유로 연차를 승인해 주는 회사는 듣도 보도 못했다. 본사 노무 담당자와 면담을 잡아 줄 테니 본사에 보낼 요청 사항을 제출하라.’ 고 해서 그 동안 어벤져스에게  과외 받은 내용을 토대로 작성하고 문제의 여지는 없는지 검토 까지 받아서 요청 사항을 보냈다.



<요청사항>
1. 콜센타 사업 운영의 특수한 형태에 대해 언급 하셨는데요. 콜센타는 근로기준법위에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사업운영의 막대한 지장을 실장이 임의대로 판단 할 수도 없고 입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필요하다면  회사가 연차를 반려 했던 게 실제 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해서 그런 건지 법적 판단을 받아 보겠습니다.
2. 실장의 의무와 권한으로 포장하지 마세요.
실장은 9/4일 면담 시에 본인이 말했듯이 아프다는 상담사의 건강상태에 대해서 최소한의 확인도 없이 연차를 반려 했습니다. 근무 비율을 조정하는 것이 의무이고 권한이라면, 파견 노동자의 안전 보건에 있어 원청은 그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사람이 먼저지 근무 비율이 먼저일 수는 없습니다.
3.결론은 노동자가 연차를 쓰겠다고 하면 인정해줘야 하는 것이 기본이고 예외는 특수한 경우입니다. 예외를 일반적인 것처럼 주장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저는 앞으로 관리자에게 연차 신청 시 구구절절 사유를 말 할 생각도 없고, 연차 사용 시기는 제가 정할 겁니다. 회사는 저의 자유로운 연차 사용을 보장 해주시길 요청합니다.

내용을 검토한 본사는 하루만에 ‘너는 우리 회사 소속이 아님으로 파견사랑 해결 보라’ 며 발을 뺐다. 전략가의 예언대로 파견사에서 나온 처음 보는 나의 담당자는 ‘사이좋게 지내면 참 좋겠다.’라는 의미의 개소리를 길게 하고 떠났다.


그날 이후, 보란 듯이 당일 연차를 자체 승인 하고, 푹 쉬면서 전략가에게 이번 케이스를 마무리할 타이밍에 대해 조언을 받으며 각을 재고 있는데, 자신의 화를 참지 못 한 관리자가 연차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을 공지하고 자폭해버린다. 그렇다, 이제 해결사 등판 타임이다. 공지 내용을 캡쳐 해서 해결사에게 보냈다. 해결사는 원청, 관할 노동청, 파견사에 시정 조치 공문을 보냈다. 저 높은 본사에서부터 굴러 떨어지는 큰 돌을 때려 맞고 가루가 되어버린 콜센타는 마침내 사전 승인 없이 연차를 상담사가 직접 신청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고, 전 직장도 함께 다닌 동료에게 너는 가는 회사마다 좋은 회사로 만드는 거 같다는 엄청난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손맛을 만끽하기도 전에 파견사에서 전화가 왔다. 본사가 계약 종료 공문을 보내왔다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고,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며 하소연을 했다. 모르쇠로 일관 했지만 조금 멍해져서 이 타이밍에 파견사 자체를 날려버리는 대기업 클라스에 경의를 표 할 수밖에 없었다. 본사에서는 다른 파견사로 면접을 보고 합격하면 계속 일 할 수 있도록 배려 해 주겠다고 한다. 물론 면접 결과는 자기들이 책임 질 수 없다고도 했다. 해결사에게 알렸다. 나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10월에 바뀐 실업급여를 알아보니, 지금 회사에서 주는 월급과 별반 크게 다르지 않아서 다시 멍해지고 조금 허무해졌다. 어제 사직서를 받았다. 계약 종료인데 사직서 왜 쓰라고 하냐고 끝까지 따지는 나에게 파견사는 혀를 내둘렀다. 그럴 만도 했다. 내가 봐도 전과 비교하면 정말 다른 스타일의 노동자가 되어 건강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두 번째 퇴사를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실제 노동청에 민원을 내 본 적도 없다. 왕따라 단체 행동은 꿈도 못 꾼다. 심지어 내 이름을 직접 드러낸 적도 몇 번 없다. 그럼에도 회사에 원하는 바가 생기면 나의 어벤져스의 도움으로 결국 다 이루 냈으니, 놀라운 승리의 기록이라 생각한다. 비록 괜히 덤벼서 짤린다는 조롱도 들려오지만, 이정도가 스스로를 조금 비겁하다고 느끼는 자에게 어울리는 적당히 씁쓸한 해피엔딩 같다.
이 글을 읽는 도움이 절실한 상담사가 자신의 슈퍼 히어로를 찾기 바라며 존경과 감사와 사랑을 담아 씁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