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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과 싸운 사람들의 꿀팁을 전수합니다!

직장 내 미운오리새끼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것이다.

  • 작성일
  • 20-11-18 11:39
  • 조회
  • 2,300



개조한 오토바이 소음은 약 120 데시벨로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소음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뜬금없이 왜 소음 이야기냐구요? 체감 120 데시벨의 소음으로 갑질을 당했던 기억 탓입니다. 120 데시벨의 소음에 노출되면 두 손바닥을 펼쳐 양 귀를 막아도 그 소리는 직격탄처럼 달팽이관을 자극합니다. 그렇게 3개월동안 저는 최소 9시간 이상을 비행기 이륙 소음 수준의 스트레스에 노출된 채 살았습니다. 잊을만하면 계속해서 귓 속을 맴도는 상사의 고함소리 때문이었습니다.


 갑질을 하던 상사는 목청 좋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키가 커서 목청이 좋은 건지 목청의 근원을 알 수는 없었지만, 사장님 앞에서는 나긋나긋하던 목소리가 사원들 앞에만 서면 우렁차고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변하곤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타겟이 된 건 저였습니다. 어느 날 저를 호출하더니 그 큰 사무실 전체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저에게 악담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니가 대체 업무시간에 하는 게 뭐가 있어? 일 이딴 식으로 할거면 당장 회사 때려 치우고 나가! 내가 언제까지 니가 삽질하는 걸 지켜보고 있어야 해?” 그 큰 목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우는데 회사 사람들은 그 누구도 모니터에 고정했던 시선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100명의 사람들이 홀로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돌을 든 사람은 상사 한 명 이었지만, 그 상사 주변에는 그를 지지하는 99명의 사람이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저는 사무실 직원 100명 앞에서 영혼까지 샅샅이 털리는 듯한 기분을 맛봐야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상사는 사무실에서 공개적으로 저를 타박하는 언행을 종종 구사했습니다. 사무실 전 직원들이 알 수 있도록 낙인 찍은 셈입니다. 저는 회사에서 미운 오리새끼가 되었고, 일못하는 직원으로 낙인 찍혔고, 상사가 공식으로 지정한 왕따 신세가 됐습니다. 매일 울면서 출근하고, 차라리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장기 입원하는 걸 수십 차례 상상했습니다. 회사를 제 마음대로 그만두지 못하는 제 사정이 딱해서 울었고, 수치스럽고 더럽더라도 이 월급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제 신세가 불쌍해서 울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짤리면 어떻게 할지, 실업급여는 받을 수 있을지 궁리하는 제 자신이 궁색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직장갑질119 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수기도 읽게 됐습니다. 저만큼이나 혹은 저보다도 더 어려운 상황에 있던 분들이 전수해주는 갑질 벗어나는 비법을 하나씩 메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사가 호출 할 때는 휴대폰을 꼭 녹음 모드로 전환하고 대화 전체 내용을 녹음했습니다. 저와 유사한 갑질 사례들을 찾아보고 대처방안을 따라했습니다. 변호사와 노무사 등을 통해서 제 사례에 대해 조언을 구했고, 갑질 피해 신고센터 등 외부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기관들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상사에게도 제가 언제든지 액션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서서히 어필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질하는 상사에게 어떻게 문제제기를 할지 알고나니 두려움은 아주 조금 사라졌습니다. 더이상 일방적으로 참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여차하면 상사를 신고하겠다는 생각으로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전래동화 같은 극적인 권선징악은 없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말단 직원이고, 저를 괴롭히던 상사들은 여전히 직책을 유지한 채 고개를 뻣뻣이 들고 회사에 다닙니다. 다만 이제 그들은 결코 예전처럼 갑질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전보다는 조금은 몸을 사리고 조금은 덜 괴롭힐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갑질의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수많은 을들에게 크게 소리 내어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갑질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비겁하고 치졸하고 극악무도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커녕 인간애도 없으며, 사람이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도리마저 저버린 사람들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제 잘못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제가 잘못해서 상사로부터 그렇게 치욕스러운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해서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그런데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큼은 명확합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을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설사 잘못을 했더라도 그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개인의 수치심을 자극할 정도로 인격 모독을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사실 아직도 왜 타겟이 저였는지 제가 뭘 그렇게 잘못 했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잘못된 타이밍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상사가 보기에 제가 만만해보여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미친개에게 물린 탓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직장 갑질을 당하는 동안 저는 제 자신을 미워하는 데 온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부당한 현실을 지적하기보다는 내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게 문제를 이해하기에 간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개인이 아니라 구조에 있었습니다. 제가 괴롭힘을 당하는 동안 저는 철저히 혼자였습니다. 저를 무심하게 혹은 무기력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동료들 슬그머니 못본 척 고개를 돌리던 사수까지, 그 누구도 저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주지 못했습니다. 


 냉정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갑질을 당하면서 누군가 나를 구해줄 것이라고, 참으면 나아질 거라고 결코 기대하지마세요. 사회는 정글처럼 냉정하고 아무도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당신을 위해 부당함에 맞서 싸워줄 사람은 없습니다. 갑질을 참다보면 점점 더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오로지 나만이 나를 보호할 수 있고, 나를 변호할 수 있습니다. 무섭더라도 두렵더라도 두 손 불끈 쥐고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세요. 저도 해냈으니 여러분도 해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갑질을 당하는 수많은 을들에게 고합니다. 무소의 뿔처럼 굳건하게, 고개를 당당히 치켜들고 정면을 주시하면서 걸어나가세요.